정광경(廣敬)
1586~1644
자(字)는 공직(公直) 호(號)는 추천(秋川), 좌의정(左議政) 창연(昌衍)의 아들, 1612년(광해군4)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세자익위사 세마(世子翊衛司洗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고, 이해 증광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 수찬(修撰)에 등용되고 폐모론(廢母論)을 반대했다. 의정부(議政府) 사인(舍人)을 거쳐 인조반정 후 응교(應敎), 사도시정(司導寺正), 사간(司諫)을 지내다가 폐모론(廢母論)에 가담했던 자책(自責)으로 사퇴를 간청했으나 부친을 위한 행위로 인정되어 계속 요직(要職)에 등용,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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