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성(廣成)
1576~1654
자(字)는 수백(壽伯), 호(號)는 제곡(濟谷), 좌의정 창연(昌衍)의 아들. 1601년(선조34) 진사가 되고 1603년 식년문과에 병과(兵科)로 급제, 검열(檢閱)에 발탁되고 대교, 수찬, 교리, 지평을 역임했다. 1608년에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고, 1618년(광해군10) 폐모론(廢母論)이 대두했을 때 부친이 정청(庭廳)에 참가하지 않아 탄핵을 받았다.
광해군 말년에 황해도. 경기도의 관찰사를 역임, 인조반정(仁祖反正) 후 강원도. 경상도의 관찰사를 역임하고 10여년 은거하다가 1649년 효종(孝宗)이 즉위(卽位)하자 형조판서가 되었으나 곧 사퇴,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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