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錡)
1574~1642 조선중기 유학자이다. 자(字)는 정보(靖甫), 호는 금재(琴齋), 경상북도 대구 출신으로 증조부는 어모장군(御侮將軍) 세검(世儉), 조부는 임하(林下) 사철(師哲), 부친은 낙애(洛涯) 광천(光天)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검약하였고, 예학(禮學) 등에 극력 탐구하여 당시 사우(士友)들의 추앙을 받았다. 부모를 극진히 모시어,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칭찬하기를“효자(孝子) 집안에 또 효자가 났다.”하였다.
1594년(선조27) 21세 때 부친이 사망하였을 때, 막내 동생 정수(鄭鐩)는 아직 어려 혈혈 고아나 다를 바 없었다. 가난한 집안에서도 한강(寒岡)과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의 문하에 들어가 득문대도(得聞大道) 하였다. 또한 당시 제현(諸賢)인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 사월(沙月) 유시번(柳時藩), 동고(東皐) 서사선(徐思選), 도곡(陶谷) 박종우(朴宗祐) 등과는 도의로써 교유하며 학문을 강론하였다. 향년 69세에 사망하니, 묘지는 대구시 복현동(伏賢洞) 손좌 원(巽坐原)이다.
시문집으로 《금재일고(琴齋逸稿)》를 남겼는데, 목활자본 2권 1책으로 1933년에 간행되었다. 아들은 허씨로부터 정석의(鄭碩儀), 유씨로부터 정석창(鄭碩昌), 정석영(鄭碩榮), 정석화(鄭碩華)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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