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난종(蘭宗)
1433~1489 자(字)는 국형(國馨), 호(號)는 허백당(虛白堂), 시호(諡號)는 익혜(翼惠), 직제학 사(賜)의 아들, 1456년(세조1) 생원, 진사, 양시(兩試)에 합격하고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승문원 부정자를 거쳐 검열. 대교. 통례문 봉례랑(通禮文奉禮郞), 감찰, 이조좌랑 등을 지내고, 1460년(세조6) 봉교(奉敎)로 정자청(鄭自淸)과 함께 서자 출신의 과거 응시를 반대했다.
1463년 시강원 문학(侍講院文學)을 거쳐 예조정랑. 종부시소윤(宗簿寺少尹)을 지냈고, 1466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정과(丁科)로 급제,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었으며 발영시(拔英試)에 급제했다. 그 후 좌부승지. 예조참판을 지낸 뒤 등준시(登俊試) 급제, 형조참판으로 오위장(五衛將)을 겸했다. 1467년 황해도 관찰사로서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군정(軍丁 :군역(軍役)의 의무를 지는 장정)을 모아 난의 평정에 공을 세우고 이듬해 호조참판)에 전임, 1469년(예종1)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로서『세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그 후 이조참판을 지내고, 1470년(성종1)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로 사은부사(謝恩副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와 이듬해 좌리4등공신(佐理四等功臣)으로 동래군(東萊君)에 봉해졌고,『예종실록(睿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다. 그 후 영안도 관찰사(永安道觀察使), 호조참판· 영안북도병마절도사(永安北道兵馬節度使),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1483년(성종14) 주문부사(奏文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평안도병마절도사를 거쳐 우참찬 · 이조판서 · 공조판서 · 호조판서 등을 지냈다. 훈구파(勳舊派)의 중진으로 성리학(性理學)에 밝았으며, 서예에 일가를 이루어 초서, 예서(草書 隸書)를 특히 잘 썼고 촉체(蜀體)에도 뛰어났다. 시호는 익혜(翼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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