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세(光世)
1457~1514
사섬시정(司贍寺正) 집의 난손(蘭孫)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배조(裵稠)의 딸이다. 1479년(성종10)에 승사랑으로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갑과 1인으로 급제하고, 이어 홍문관부수찬·1481년(성종12) 사간원 정언(正言)·헌납(獻納)·장령(掌令)·사간(司諫)을 거쳐 1493년(성종24) 시강원 보덕(侍講院輔德)으로 서연관(書筵官)이 되어 대가(代加)를 받고 3품관으로 승진하였다.
1493년(성종24) 군자감정으로 장빙(藏氷)을 잘못하여 아버지와 함께 파직되었으나 이듬해 사헌부 집의(執義)로 복권(復權)하여, 1496년(연산군2) 동부승지·우부승지·좌승지를 거쳐, 1498년(연산군4)에 가자(加資:승급)하여 개성유수(留守), 형조참판(刑曹參判)을 지냈다.
1504년(연산군10) 강원도관찰사·안주선위사(安州宣慰使), 1508년(중종3)에 형조판서·평안도관찰사·지중추부사를 거쳐 1512년(중종7) 공조판서, 경기관찰사 등을 지냈다. 시호는 소평(昭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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