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곤(坤)
생몰년 미상(未詳).
호(號)는 복재(復齋), 흥사(興嗣)의 아들이며, 이색(李穡)의 문인(門人)이다. 1386년(우왕12) 고려문과에 병과(丙科) 2위로 급제하였다. 1414년(태종14)에는 전주교수관(全州敎授)으로 있으면서 생원 한성시(漢城試) 향시(鄕試)의 법(法)을 행하도록 건의하여 채택되게 하였다. 1417년(태종17)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일 때 황단유(黃丹儒)와 박송비(朴松庇) 자손의 노비송사를 담당했던 형조(刑曹) 대간(臺諫)의 관원이었다는 이유로 하옥 되었다가 1418년(태종18) 직첩(職牒)을 돌려받았다.
1420년(세종2) 사재(私財)로 서원(書院)을 세워 고을 사람들은 물론 타향 사람들도 배우기를 원하는 자이면 다 가르쳤다 하여 의부(義夫)로 발탁되어 세종(世宗)께서 요량하여서 벼슬을 주라고 하셨다. 1428년(세종10) 성균사성(成均司成)일 때 진사시 시행과 원우의 중을 주지로 삼자는 의견의 글을 올렸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균관 대사성(大司成). 지제교(知製敎) 등을 역임하였고,『고려사』를 편찬할 때 뛰어난 문장력으로 큰 공헌을 했다. 은퇴 후 벽골(碧骨)의 시골집에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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