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천(光天 )
1553년∼1594년.
자(字)는 자회(子晦) 호(號)는 낙애(洛涯), 사철(師哲)의 아들, 효성이 극진하였으며,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배웠고,《소학》을 자신을 다스리는 요체로 삼았다. 1592년 임지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함께 의병(義兵)을 모집하여 관군을 도와 공(功)을 세웠다.
효행이 지극하여 상을 당했을 때 여막에서 삼년상을 치렀다. 1582년(선조15)에 금암초당(琴巖草堂)을 중건하였다. 1764년(영조40)에 창건된 대구금암서원(琴巖書院)에 아버지와 함께 제향되었다. 저술로《낙애선생문집(洛涯先生文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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