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조(萬朝)
1858∼1936 조선말기의 학자. 자(字)는 대경(大卿), 호(號)는 무정(茂亭). 서울출신. 기우(基雨)의 아들이다. 강위(姜瑋)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문학에 일가(一家)를 이루고 1884년(고종21) 교섭통상아문(交涉通商衙門)의 주사가 되었다. 1889년에는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예조참의와 승지를 거쳐 1894년에는 내부참의에 이르렀다.
1896년 4월에 이르러 1895년 팔월역변(八月逆變)과 시월무옥(十月誣獄)에 관련되어서주보(徐周輔)·정병조(鄭丙朝)·김경하(金經夏)·이태황(李台璜)·우낙선(禹洛善)·전준기(全晙基)·이범주(李範疇)·홍우덕(洪祐德)·정인흥(鄭寅興) 등과 함께 구금되어 심판을 받던 중 고종의 특명으로 우낙선과 함께 유배 15년형에 처해져 전라도 진도에 유배되었다.
1907년 일제에 의하여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그해 12월에 취한 사면에 의거하여 관계(官界)에 복귀하였다. 곧 규장각부제학이 되고, 헌종·철종 양조(兩朝)의《국조보감 國朝寶鑑》편찬위원이 되었다. 1910년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병탄된 뒤 이왕직전사관(李王職典祀官)과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촉탁, 그리고 조선사편수회의 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6년 경성제국대학의 강사가 되고, 1929년에는 경학원(經學院)의 대제학이 되어 명륜학원(明倫學院)의 총재를 겸임하였으며, 이왕가실록(李王家實錄)의 실록편찬위원이 되어《고종실록》《순종실록》의 편찬사무를 주재하였다. 시문에 남달리 능하였는데, 특히 변려문(騈儷文)에 뛰어났으며 글씨도 잘 썼다. 저서로는《무정전고 茂亭全稿》가 있다. 1919년 기미보를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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