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순(晩淳)
1721~1781 자(字)는 상우(尙友), 석백(錫百)의 아들, 1755년(영조31) 정시(庭試) 병과(丙科) 1위로 급제하여, 1756(영조31)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1759년(영조35) 어사(御史)로 갑산(甲山)에 다녀오고 1760년(영조36) 문천군수로 나갔다. 1762년(영조38) 부교리(副校理), 승지(承旨) 등을 역임한 후 1764년(영조40) 장흥부사로 나갔다.
1767년(영조43)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으로 체차(遞差)한 때 다른 사람으로 갈아서 임명되었다가 1769년(영조45) 다시 사간원 대사간이 되었다. 1774년(영조50)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을 거쳐 이조참의가 되었다. 1775년(영조51) 승지가 되었고, 1776년(정조즉위)에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승진 되어 형조참판을 거쳐 이듬해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역임한 후 1779년(정조3) 다시 사간원 대사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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