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만(東晩)1
1753~1822 자(字)는 우고(友古), 호는 졸암(拙菴), 대사간 계순(啓淳)의 아들이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고, 1804년(순조4) 경릉참봉이 되어 경기도 고양군에 나갔으며, 그뒤 여러 벼슬을 거친 뒤 진주목사가 되었고, 1819년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혜국(惠局)의 낭(郞)이 되었으며, 1822년에는 아들 원용(元容)이 문과에 급제하여 크게 영달하였으므로 추은(推恩)의 혜택을 입어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첨지중추부사로 취임하였다. 그 뒤 곧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이 되어 왕실친족간의 친목도모에 진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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