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년(大年)
1503~1578 자(字)는 경로(景老), 호(號)는 사암(思菴), 시호(諡號)는 충정(忠貞), 전(荃)의 아들, 1531년(중종26) 생원시 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1535년 지평(持平)에 제수되고 이어 장령(掌令), 부교리(副敎理), 집의(執義), 직제학(直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1542년(중종37) 감찰로서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1544년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를 거쳐 1546년(명종1) 황해도 관찰사를 지냈다. 이어첨지중추부사, 형조와 병조참의, 도승지,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 경기관찰사, 호조참판, 대호군, 한성부좌윤, 대사헌, 형조참판 등을 두루 지냈다. 선조가 즉위한 후에는 호조판서, 대사헌, 이조판서, 우찬성 등을 역임하였다.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명종(明宗) 때 승지로 있으면서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동생으로 권세를 누리던 윤원형(尹元衡)의 첩 정난정(鄭蘭貞)을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 봉하라는 전지(傳旨)가 내려오자 이에 반발하여 일부러 지연시켰는데, 동료들이 그가 없는 틈을 타 시행해 버렸다. 네 임금을 섬기며 권문에 아부한 적이 없고, 두 번씩이나 이조판서를 역임하여 당대의 명경(名卿)으로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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