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섭(文燮)
1859~1929 조선말기 유학자·효자. 자는 주성(周聖)이고, 호는 아석(我石)이다. 구류재 휘;주(九柳齋 諱;輳)공(公)의 12대손으로 부친은 수대(秀大)이고, 모친은 신성선(愼性宣)의 딸 거창신씨(居蒼愼氏)이다. 생부 수갑(秀甲)과 생모 권계성(權桂成)의 딸 안동권씨(安東權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느 겨울에 생부가 앓아눕자 얼음을 깨고 메기를 잡아다 드렸는데 병에 차도가 있자 지극한 효성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조원식(趙元植)과 함께 갑오경장(甲午更張)에 참여하였다. 이후 1901년(광무 5)에 궁내부주사(宮內府主事)에 제수되었으며, 품계는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이르렀다. 문집으로 정인서(鄭寅書)가 서문을 쓰고, 정창석(鄭昌錫)이 발문을 쓴 2책의 《아석유고(我石遺稿)》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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