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규(世規)
1583~1661 자(字)는 군칙(君則), 호(號)는 동리(東里), 시호(諡號)는 경헌(景憲), 율(慄)의 아들. 1613년(광해군5)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음보(蔭補)로 의금부도사에 등용, 1628년(인조6) 화순현감으로 선정(善政)을 베풀어 표리(表裏 :속과 겉 옷감의 안팎 감)를 하사받고, 안산군수를 거쳐 1636년 공충도(충청도) 관찰사에 특진, 이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군사를 이끌고 포위당한 남한산성을 향해 진격하였으나 용인(龍仁)에서 패전하였다.
호조참의를 거쳐 1641년 전라도 관찰사, 이어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를 지내고 1644년 공조판서로 승진, 1654년(효종5) 이조판서로 강화도를 시찰(視察) 후 승천(昇天), 연미, 갑곶, 광성 등 여러 진(陳)을 설치케 했다. 형조판서를 지낸 뒤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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