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연(昌衍)
1552~1636. 자(字)는 경진(景眞), 호(號)는 수죽(水竹), 좌의정 유길(惟吉)의 아들. 1579년(선조12) 진사가 되고, 이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1583년 사가독서(賜暇讀書)했다. 이해 이조좌랑에 특진, 1588년 동부승지(同副承旨)를 거쳐 예조판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1614년(광해군6)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으나, 이때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사퇴,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다시 좌의정을 지내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궤장(궤杖)을 하사받았다. 광해군의 비(妃) 류씨(柳氏)가 그의 조카딸이었으므로 광해군 때 억울하게 옥사(獄事)에 관련되어 구명(救命)을 호소해온 많은 사람들을 구해 주어 칭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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