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최조(최朝)
1800~1859 자(字)는 구지(久之) 호(號)는 금초(錦樵). 기익(基翼)의 아들, 1834년(순조34)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3위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1835(헌종1) 예문관(藝文館)검열(檢閱), 1837년(헌종3)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을 거쳐 1845(헌종11)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을 역임하였다.
1847(헌종13) 이조참의, 1849(철종즉위) 배종승지(陪從承旨), 1851(철종2) 전라도 관찰사로 나갔다가 1854(철종5) 이조참판을 거쳐 1856년(철종7) 한성부판윤, 형조판서와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1858년(철종9) 예조판서를 지내고 이듬해 다시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