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룡(見龍)
생졸년 미상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한 후 1580년(선조13) 선전관(宣傳官)을 역임하고 1592년(선조25) 종성부사(鍾城府使), 회령부사(會寧府使)를거쳐 이듬해 함경북도병마절도사(咸鏡北道兵馬節度使)를 지냈으며 1594년(선조27) 열흘 사이에 계속공을 거두어 상가(賞加) 되었다.
1595년(선조28) 중풍(中風)으로 체직(遞職)되고 외사(外司)의 의원(醫員)으로 병(病)을 간호(看護)하게 하였다. 1599년(선조32) 반신불수(半身不隨)로 언어(言語)가 불통(不通)한지 5년이 되어도 병사(兵使)의 의망(擬望)에 참여(參與) 특명(特命)으로 옮기지 말도록 하였다. 임진왜란(任辰倭亂) 때 전공(戰功)을 세워 좌찬성(左贊成)에 증직(贈職)되었다. 창열사(彰烈祠)에 제향(祭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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