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화(采和)
1611~1677 . 자(字)는 후선(後仙). 참판 광경(廣敬)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재행(才行)으로 이름이 있었으며, 인조 때 정묘호란을 겪은 뒤 인재를 구할 때 천거되었으나 나이가 어려 응하지 않다가 늦게 문음(門蔭)으로 입사(入仕)하였다. 의영고(義盈庫)와 사복시(司僕寺)의 주부, 선공감첨정(繕工監僉正), 한성부서윤, 외직으로는 홍산·배천·평양의 판관, 해주목사를 거쳐 인천부사를 지냈다. 효우(孝友)하였으며, 궁급(窮急)한 사람을 보면 재물을 다하여 이를 도왔고, 관에 있어서는 근면하고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