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제(華齊)
1618∼1674 자(字)는 서망(西望), 호(號)는 취전(醉全). 증조는 휴복(休復)이고, 조부는 호(灝)이다. 부친 동래부사(東萊府使) 양필鄭良弼)과 모친 이양(李揚)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1639년(인조17) 생원 진사시에 합격하여, 1660년(현종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667년(현종8)부터 지평·정언·장령·헌납·사서 등의 관직과 차왜(差倭) 귤성진(橘成陳)을 접대하는 접위관(接慰官)을 담당하였다. 1669년(현종10) 서장관의 직책으로 복선군(福善君) 이구(李灸) 등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경제문제에 관심이 많아 진휼정책의 필요성과 효과적 수행, 전마(戰馬)의 방목 등에 관련된 여러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1671년(현종12) 다시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었다가 이듬해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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