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협(恊)
1561∼1611 자(字)는 화백(和伯), 호(號)는 한천(寒泉). 우의정 언신(彦信)의 아들이다. 1585년(선조18) 진사시에 장원한 뒤 1588년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정자를 지냈다. 1589년 아버지가 정여립(鄭汝立)의 모역(謀逆)사건에 연루되어 남해로 유배되었다가 그 곳에서 죽은 뒤로는 미관말직으로 전전하다가 1599년 아버지가 신원(伸寃)되자, 검상에 기용되었다. 이때부터 보덕·수찬·헌납·장령·사인·판교·사간·부응교·응교·사예 등을 역임하였다.
1605년 동지부사로 명나라에 갔다 이듬해 돌아와 동지중추부사·대사간 등을 지내고, 1608년(광해군즉위년)에 이조참판·좌부빈객·대사헌·대사간·부제학·예조참판·동지의금부사를 거쳐 이듬해 동지춘추관사, 예조참판, 이조판서가 되었다. 문장에 능하여 앞서 임진왜란으로 소실(燒失)된 역대실록(歷代實錄)을 중간(重刊)할 때에는 편수관으로 참여하였다. 시주를 즐기고, 노소현우(老少賢友)를 가리지 않고 교유(交遊)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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