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和)
생졸년 미상 조선중기의 역관. 자(字)는 춘경(春卿), 호(號)는 송암(松庵). 영의정 광필(光弼)의 아들이다. 한어(漢語)에 능숙하여 벼슬이 사역원정(司譯院正)에 이르렀다. 시문(詩文)에 능하였고, 수학에도 정통하였다. 어려서부터 중국을 오가면서 무역에 종사하였다. 무역거래에 있어서 다른 사람은 은(銀)을 결제수단으로 하였으나 나라에서 금하는 것이었으므로 인삼을 결제수단으로 삼았다.
그런데 상인들이 길경(桔梗)이를 인삼이라 속였는데, 이를 모르고 가지고 가서 무역에 실패하였다. 이로써 빚만 지고 가산을 탕진하였으며, 선천에 유배되었다. 이때에 유성룡(柳成龍)의 아버지인 중영(仲郢)이 의주목사로 부임하고 있었는데, 그의 시재(詩才)에 감탄하여 격의 없이 교유하였다. 시문집 2권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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