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섭(彦燮)
1686~1748 자(字)는 공리(公理), 호(號) 정지재(定止齋), 광주부윤 필동(必東)의 아들. 권상하(權尙夏)의 문인(門人). 1717(숙종43)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725년(영조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장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이 되었다. 1727년에 정언(正言)이 되었으나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파직,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반란이 평정(平定)된 뒤에 지평(持平)으로 복직되었다. 1729년 동래부사(東萊府使)에 이어 충청도 관찰사(觀察使)·동부승지(同副承旨)·광주부윤(廣州府尹)·도승지(都承旨)·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병조참판(兵曹參判)·삼화부윤(三和府尹)·안변부사(安邊府使) 등을 역임, 호조.예조의 참판(參判)을 지내고 1741년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글씨에도 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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