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번(之蕃)
1579~? 자(字)는 인좌(仁佐). 지례현감 정홍(鄭泓)의 아들로 남원에서 태어났다.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의병이다. 어려서부터 충효의 도리를 익혔으며 재주와 절개가 뛰어나 사우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음직(蔭職)으로 사산감역(四山監役)에 제수되었다. 1636년(인조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적이 서울을 침범하자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 오랑캐에 의해 산성이 포위된 상황에서 국난 극복의 노력을 독려하는 교서가 내려졌고, 이에 여러 고을 선비 중 오랑캐에게 적개심을 갖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는 또 5현의 격문을 보고 같은 고을의 의사들과 함께 여산으로 가서 다른 의병들과 힘을 합쳐 진격하여 청주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수차례에 걸쳐 적병을 무찌르는 전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통곡을 하며 고향에 돌아와 파동의 본가에서 조용히 여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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