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요성(堯性)
1650~1724 조선후기 유학자. 자(字)는 성지(聖至)이다. 부친 정제(鄭焍)와 모친 조정형(趙廷珩)의 딸 한양조씨 사이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시문(詩文)으로 명성이 있었으나 수차례 과거에 낙방한 뒤 벼슬에 뜻을 잃고 은거하였다. 시문에 능했으며, 산수(算數), 천문(天文) 등에도 두루 박식하였다. 함께 교유한 인물로 이재(李栽)·김태중(金台重) 등이 있다.
유고로 《수와유고(睡窩遺稿)》가 전하는데, 동래정씨(東萊鄭氏) 5대 인물의 시문을 모은 《임장세고(林庄世稿)》에 정영방(鄭榮邦)의《석문유고(石門遺稿)》·정혼(鄭焜)의《익재유고(益齋遺稿)》·정요천(鄭堯天)의《눌재유고(訥齋遺稿)》·정도건(鄭道鍵)의《천연대유고(天然臺遺稿)》·정태래(鄭泰來)의《송설헌유고(松雪軒遺稿)》와 함께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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