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당(子堂)
생몰년 미상(未詳) 자(字)는 승고(升高) 호(號)는 청송(靑松), 기(期)의 아들. 직산(稷山) 출신으로 시(詩)에 뛰어나고 해학(諧謔)을 즐겼다. 1469년(예종1) 기축(己丑) 증광시(增廣試) 진사(進士) 3등 45위로 합격하고, 1488년(성종19) 무신(戊申) 별시(別試) 3등 2위로 급제하여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가 되었다.
1490년(성종21)에는 정자(正字)로서 후원에서 활을 쏘아 여러 문신과 함께 활[弓]과 먹[墨] 그리고 벼루[硯] 등을 상으로 받았으며, 이듬해 가주서(假注書)를 지냈다. 1492년(성종 23)에는 《북정일기(北征日記)》를 초창(草創)하여 잘못 내보인 것으로 탄핵을 받았으나, 무재(武才)가 있다는 추천을 받아 겸선전관(兼宣傳官)이 되었다. 또 같은 해 교서관저작(校書館著作)으로 시사(試射)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아마(兒馬) 1필(匹)을 받았다. 이후 연산군 때는 광인(狂人)으로 행세하며 사화(士禍)를 면했다고 전한다. 저서로《청송시집(靑松詩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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