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모(殷模)
1870~1953(세종1) 일제강점기 유학자·독행(篤行). 자는 주현(周顯)이고, 호는 운림(雲林)이다. 포내리(浦內里) 출신이다. 고조는 만희(萬熙), 증조는 인록(仁祿), 조부는 진관(進寬)이고, 부친 원규(源奎)와 모친 진산강씨(晉山姜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조부는 강시회(姜時會)이다. 부인은 이우일(李佑一)의 딸 여주이씨(驢州李氏)이다.어려서부터 몸가짐이 바랐으며, 영특하였다. 매사에 임해서는 원칙대로 하였다.
과거에 뜻을 두었으나, 혼탁해져가는 세상을 보고 집에서 효도하고 제사를 받들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일에 전념하며 살았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힘을 다해서 하였으며, 묘에는 돌을 세웠다. 가난한 사람들을 때때로 구제하여 도왔으며, 일찍이 두 아들을 가르치는 데 진심을 다하여 이웃을 돕도록 가르치지 않은 적이 하루도 없었다. 8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휘봉(輝鳳)·휘옥(輝玉)이며 딸은 남정순(南廷順)에게 시집보내었다. 묘소는 마산내(馬山內) 묘장동(墓藏洞)에 자리하고 있다. 그의 문집 《운림유고(雲林遺稿)》는 기우흥(奇宇興)과 둘째 아들 정휘옥의 발문이 붙은 2권 1책의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는 주로 7언율시가 많으며, 부록(附錄)에는 묘갈명(墓碣銘)과 행장(行狀)·가장(家狀) 등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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