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진(義鎭)
1857~1930 조선 말기 관리이다. 자(字)는 경요(敬堯), 호는 수당(壽堂), 출신지는 전라북도 남원시(南原市) 도통동(道通洞)이다. 증조는 증 한성부좌윤(贈漢城府左尹) 풍동(豊東), 조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효묵(孝黙)이며, 부친은 증 비서감승(贈秘書監丞) 규유(圭裕)이다. 외조부는 밀양(密陽) 손사덕(孫思德)이며, 처부는 영천(寧川) 이시영(李時榮)이다. 천품이 순진하고 정직하였으며 재질이 영민하였다.
1900년(광무 4)에 음보(蔭補)로 참봉(參奉)의 관직에 나아가, 1905년(광무 9)에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감승(秘書監丞)에 올랐다. 향년 74세로 사망하였다. 아들은 정운완(鄭雲玩), 정운화(鄭雲和)이다. 묘지는 남원시 송동면(松洞面) 원통리(元通里) 동록(東麓) 간좌원(艮坐原)이다. 시문집으로 1900년에 간행한 《수당선생문집(壽堂先生文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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