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언섬(彦暹)
1720~1783 자(字)는 일진(日進), 창서(昌瑞)의 아들, 1750년(영조26)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及第) 하여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 한림(翰林)등 여러 벼슬을 거쳐 1758년(영조34)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로 단천(端川)에 귀양(歸養)갔다가 이듬해 석방되었다.
1762년(영조38)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장령(掌令)을 역임하고, 이듬해 다시 지평(持平)되었다가 1766년(영조42) 다시 장령이 되고 1769년(영조45)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거쳐 다시 장령(掌令)이 되었다. 1772年(英祖48) 탕평(蕩平)에 관한 상소를 올려 윤허(允許)를 받은 봐 있다. 1773년(영조49)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를 거쳐 이듬해 승정원승지(承政院承旨)가되었고 1775년(영조51)다시 승지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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