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재(以載)
1654~1689 자(字)는 춘원(春元), 호는 송정(松亭)이다. 조선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중종 때 재상을 지낸 광필(光弼)의 6세손으로 세화(世和)와 남양홍씨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 파평윤씨는 윤오거(尹五擧)의 차녀이다. 또한 윤증(尹拯, 1629~1714)과는 재종매 사이로 어려서 윤증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병이 걸리자 밤낮으로 간호하고 약을 썼는데 그럼에도 병이 심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흘려 소생시켰다고 한다. 이후 집안에 좋은 일이 있을 징조가 보이면 손가락 자른 곳의 빛이 변하지 않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징조가 보이면 빛이 변하여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그 곁을 떠나지 않고 극진히 간병하였다. 한겨울에 아버지가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자 강에 나갔으나 강물이 얼어 잉어를 구할 수 없었다. 때마침 얼음이 녹은 곳에서 잉어가 튀어 올라 그것을 잡아 드리니 병에 차도를 보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슬퍼하며 3년간 죽만 먹고 기혈이 쇠약해서 삼년상을 마친 후 바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정이재의 효행(孝行)을 기리기 위해 1720년(숙종46) 명정을 받아 정려(旌閭)가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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