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인(維仁)
1504~1553 조선중기의 의인(醫人). 자(字)는 덕로(德老). 노겸(勞謙)의 아들, 1525년(중종20) 식년시(式年試)에 진사 2등 20위로 합격한 후 1534년(중종29)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을 역임하고, 1543년(중종38)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 4위로 급제한 후 1544년(중종39) 예조정랑(禮曹正郞)을 거쳐 이듬해 봉상시첨정(奉常寺僉正)이 되었으며, 그 뒤에 봉상시정(奉常寺正)을 역임하였다.
《이생록(頤生錄)》의 저자(著者)이다.《이생록》의 서문(序文)에 그가 20세 때 중병을 얻어 누워 있었는데 5, 6년 동안 옛날부터 전해온 의서(醫書)를 보고 이양(頤養)의 방법을 체득하여 이를 모으고 간단하게 자기의 생각을 붙여 1523년(중종 18)에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쓰여져 있다. 이 책은 전대의《의방유취(醫方類聚)》의 학술적 정신과 김시습(金時習)으로부터 연결되는 조선단학파(朝鮮丹學派)의 학술사상을 계승하는 것으로 역사적 의의가 깊다. 이러한 정신은 중기의 허준(許浚)의《동의보감(東醫寶鑑)》으로까지 이어져 한국양생학의 계보를 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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