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일(惟一)
1533~1576 자(字)는 자중(子中) 호(號)는 문봉(文峯), 첨정(僉正) 난원(蘭元)의 증손, 목번(穆蕃)의 아들로 안동 출신이다. 권충정(權忠定)에게 학문을 배우고 이어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修學), 제자백가(諸子百家)에 통하고 시부(詩賦)에 뛰어나 당시 명망이 높았다. 1552년(명종7) 생원이 되고, 1558(명종13)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兵科)로 급제, 진보·예안현감, 영천군수 등을 지냈다.
그 후 설서(說書). 정언(正言). 직강(直講)을 거쳐 지평(持平). 이조좌랑(吏曹佐郞) 등을 역임, 1570년(선조3)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이듬해 사인(舍人)으로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이 되어『명종실록(明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한 후, 대사간. 승지, 이조판서 등을 지냈다.『한중필록(閑中筆錄)』,『관동록(關東錄)』,『송조명현록 (宋朝名賢錄)』등을 저술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되었다. 안동(安東)의 백록리사(柏麓里祠)에 제향(祭享)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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