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흥(寅興)
1852~? 자(字)는 주빈(周賓), 이조판서 순조(順朝)의 아들, 1878년(고종15) 유학(幼學)으로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882년 교리로 옥당(玉堂)의 연차(聯箚)에 여러 차례 참여하였고, 부호군 윤상화(尹相和) 가 진소(陳疏)한 건으로 처벌받게 되자 처벌을 둘러싸고 일어난 양사의 연차에는 지평으로 참여하였다.
1884년 수찬이 되었다가 이듬해 충청좌도 암행어사로 파견되어 민정을 시찰하고 수령의 치적을 살펴 포상 치죄를 바라는 서계를 올렸다. 1894년 7월 새로운 직제개편이 있게 되자 법무아문참의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통진군수를 거쳐 법부 민사국장 칙임관 4등이 주어졌으며, 법률기초위원장으로도 명받았다.
1896년 법부협판, 중추원2등의관으로 칙임관 3등이 되었고 1906년 중추원찬의(中樞院贊議)로 칙임관 2등이 되었다. 이듬해 기호·강원 지방에 의병이 봉기하자 이를 효유하여 해산시키기 위하여 선무사로 파견되었다. 1908년 판사로 임명되어 칙임관 1등이 되었고, 1910년 종2품에서 정2품으로 승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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